깊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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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산 0 Comments 14 Views 26-02-06 19:51본문
2/6 깊은 꿈
소년의 꿈에
곡식단이 고개를 숙이고
별들은 하나씩 그에게 기운다.
아버지의 사랑이 옷이 되어
그의 어깨 위에 빛나고,
꿈은 어둠 속에 숨는다.
웅덩이의 침묵 속에서
하늘은 이미
깊은 꿈을 꾸고 있다.
요셉의 눈물 속에
사랑이 스며,
죽음은 생명이 된다.
서로 말하기를, 보라 꿈꾸는 자가 온다 (창세기 37:19) 조선어 성경
김 박사님을 처음 만났던 1997년 봄,
우즈베키스탄 ???????? 선교사로 떠나온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관계이시다.
추억에 남는 김 박사님 멘트,
영광이를 바라보며 “네 이마에 개구장이라고 써 있네”
영광이가 이마를 문지르며 “제가 안 썼어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선교사 선배로, 인생의 선배로, 아버지 연배의 동향인 관계로, 선교지에서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지내던 분이시다.
외롭고 배고픈 우리 가족을 자주 불러 풍성한 식탁을 베풀어주신... 김 박사님.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 같은 그런 가정이셨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서의 같이 보내던 시절만큼 우리에게 많은 추억이 스려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이동진료 다닐때 아파트에 모여 약들을 까고 준비하고.. 선선한 지하실에 보관된 약들을 보고.
이동진료에 가서 우즈벡 시골의 열악한 환경에 큰 힘과 실질적 도움을 주신 기억들..
알말릭 시골에 클리닉을 준비하시고,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기다린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시고,
사모님 덕분에 맛난 식사와 멋진 가든으로 배와 눈을 풍요하게 해주셨다.
우즈벡에서 추방되어 옮겨진 이웃나라 카자흐스탄에 이사오시며
“나도 나이들어 장애인(노인)이 되었으니 장애인 사역하는 이민교 옆으로 왔다”하시며
진지한 상황속에서 위트를 잊지 않으신 분이다.
어렵게 사재를 털어 농아인 공동체에 재봉틀을 기증해주신 사건은 지금도 황송할 따름이다.
김 박사님 가정이 조지아로 사역지를 옮기신 후에 보고싶어 방문을 마치고 버스에 타며 출발하는 우리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 귓가에 지금까지 남아있다.
“예수 잘 믿어!”
미국으로 귀국하신 후, 김 박사님이 보고싶어 방문한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하신 말씀
“다른거 하지말고 성경 많이 읽어! 특히 계시록 많이읽어”
약간 말씀이 어눌해진 와중에도 우즈벡과 영상통화 할 때면 그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셔서 우리를 놀라게 하셨다.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예수님 곁으로 이사가신 김박사님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랑으로.
소년의 꿈에
곡식단이 고개를 숙이고
별들은 하나씩 그에게 기운다.
아버지의 사랑이 옷이 되어
그의 어깨 위에 빛나고,
꿈은 어둠 속에 숨는다.
웅덩이의 침묵 속에서
하늘은 이미
깊은 꿈을 꾸고 있다.
요셉의 눈물 속에
사랑이 스며,
죽음은 생명이 된다.
서로 말하기를, 보라 꿈꾸는 자가 온다 (창세기 37:19) 조선어 성경
김 박사님을 처음 만났던 1997년 봄,
우즈베키스탄 ???????? 선교사로 떠나온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관계이시다.
추억에 남는 김 박사님 멘트,
영광이를 바라보며 “네 이마에 개구장이라고 써 있네”
영광이가 이마를 문지르며 “제가 안 썼어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선교사 선배로, 인생의 선배로, 아버지 연배의 동향인 관계로, 선교지에서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지내던 분이시다.
외롭고 배고픈 우리 가족을 자주 불러 풍성한 식탁을 베풀어주신... 김 박사님.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언덕 같은 그런 가정이셨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서의 같이 보내던 시절만큼 우리에게 많은 추억이 스려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이동진료 다닐때 아파트에 모여 약들을 까고 준비하고.. 선선한 지하실에 보관된 약들을 보고.
이동진료에 가서 우즈벡 시골의 열악한 환경에 큰 힘과 실질적 도움을 주신 기억들..
알말릭 시골에 클리닉을 준비하시고,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기다린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시고,
사모님 덕분에 맛난 식사와 멋진 가든으로 배와 눈을 풍요하게 해주셨다.
우즈벡에서 추방되어 옮겨진 이웃나라 카자흐스탄에 이사오시며
“나도 나이들어 장애인(노인)이 되었으니 장애인 사역하는 이민교 옆으로 왔다”하시며
진지한 상황속에서 위트를 잊지 않으신 분이다.
어렵게 사재를 털어 농아인 공동체에 재봉틀을 기증해주신 사건은 지금도 황송할 따름이다.
김 박사님 가정이 조지아로 사역지를 옮기신 후에 보고싶어 방문을 마치고 버스에 타며 출발하는 우리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이 귓가에 지금까지 남아있다.
“예수 잘 믿어!”
미국으로 귀국하신 후, 김 박사님이 보고싶어 방문한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하신 말씀
“다른거 하지말고 성경 많이 읽어! 특히 계시록 많이읽어”
약간 말씀이 어눌해진 와중에도 우즈벡과 영상통화 할 때면 그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하셔서 우리를 놀라게 하셨다.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예수님 곁으로 이사가신 김박사님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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