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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한국이 너무 좋았던 나는 ‘왜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느냐’며 떼를 쓰며 울곤 했지요 하지만 한국 목회자 남편을 만난 뒤 알게 됐어요. 하나님이 저를 일본에서 태어나게 하고 한국으로 보내신 이유는, 양국을 잇는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을요.”
이케다 안나, 한국 이름 황안나(31) 하늘본교회(황진호 목사) 황 사모의 고향은 일본 오키나와다. 미국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의료선교를 꿈꾸던 그는 운명처럼 한국인 목회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장신대 신대원을 거쳐 지난해 8월 연세대 선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잇는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 야마토게임다운로드 다. 사모이자 두 아들의 엄마 그리고 다음 달 셋째 딸 출산을 앞둔 황 사모를 지난 12일 하늘본교회에서 만났다.
오키나와에서 4대를 이어온 신앙
황 사 바다이야기슬롯 모는 1945년 태평양 전쟁 후반기 오키나와 전쟁 직후, 미국 선교사의 영향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증조할머니로부터 시작된 4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고향 오키나와를 “일본 본토와는 결이 조금 다른 섬”이라고 소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통치를 받았던 역사적 특수성으로 미군 기지가 많고, 타 문화와 종교에도 비교적 열려 있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었다는 설명이다. 황 사모는 “일본 전체 복음화율은 1% 미만으로 매우 낮지만, 오키나와는 3%대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수용적인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반 학교에 다니면 크리스천이 한두 명뿐인 경우가 많고, 일요일 행사가 잦은 일본 문화 특성상 신앙생활을 병행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신앙을 최우선으로 여긴 부모님 릴게임바다신2 의 결단 덕분에 그는 일본 최초의 크리스천 대안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곳에서 수학하며, 그는 견고한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황 사모에게 신앙은 단순히 ‘가문의 전통’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모부가 목회하는 개척교회에서 성장하며 일상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세밀한 응답을 경험하며 바다이야기합법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음악가 집안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음악 선생님이었고, 세 자매 중 언니와 동생은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 무용에 매진하며 예술가의 길을 걸었지만, 진로를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무용의 좁은 문과 유학 및 발레단 진출에 따른 현실적인 부담이 컸던 탓이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데 무엇을 도구 삼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어머니의 권유로 의료선교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렇게 선교의 도구를 찾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의 기독교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도전을 시작했죠. 하지만 졸업을 앞둔 4학년 무렵 내가 진정으로 갈망한 것은 의료라는 ‘수단’이 아니라 선교라는 ‘본질’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었어요. 도구가 없더라도 그저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뜨겁게 차올랐습니다. 마침 당시 미국은 트럼프 1기 정부의 영향으로 외국인 학생에 대한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는 등 현실적인 문도 좁아지고 있었어요.”
국경을 넘어 신학으로 맺어진 운명적 만남
황 사모가 한국에서의 신학 공부를 결단한 데에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한국과의 인적 교류가 큰 몫을 했다. 어린 시절 오키나와의 개척교회를 찾았던 한국 선교팀부터, 유학 시절 곁을 지켜준 한국인 친구들까지. 그들과 맺은 깊은 유대감은 그를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이끌었다.
그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오키나와는 지금처럼 가깝고 흔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인 항공편만 오가던 시절, 그럼에도 이모부의 개척교회에는 한국 선교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일곱 살 소녀의 눈에 비친 한국 선교팀의 모습은 너무나 따뜻했다. 그는 “어릴 적 엄마에게 ‘나는 왜 한국인이 아니냐’고, ‘왜 내 이름은 김안나가 아니냐’고 엉엉 울었을 만큼 한국을 향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회상했다.
“고교 시절 부산에서 보낸 3개월간의 교환학생 생활, 그리고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한국 학생들과의 교류, 미국 유학 시절에도 늘 한국인 공동체 안에서 머물며 언어와 문화를 익혔습니다. 미국에서 의료선교를 꿈꿨던 이유도 사실 북한 사역을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었어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열심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께서 내 안에 심어주신 사명 같아요.”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고 한국을 찾은 그는 운명처럼 지금의 남편 황진호 목사를 만났다. 일본 선교 사역을 하던 지인의 소개로 만난 자리였다. 두 사람은 신앙의 동역자로 서로를 격려하며 관계를 쌓아갔다. 황 목사는 그에게 장신대 외국인 전형을 안내하며 신학의 길을 함께 걷길 권했고, 이후 오키나와로 떠난 비전트립에서 두 사람의 인연이 더욱 깊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먼저 마음을 고백한 것은 황 목사였다. 황 목사는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국제결혼에 대한 마음을 주셨는데,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아내를 보며 이 사람을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고백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교제로 사랑을 키워왔다. 2018년 3월 황 사모가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며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남편은 당시 신대원 3학년, 그는 1학년이었던 그해 7월,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에서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황 사모는 남편에 대해 성격이 밝고 참 재밌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신앙의 성숙함이 깊게 느껴졌다”며 “한 살밖에 많지 않은데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신앙적인 질투가 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이어 “늘 신앙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왔는데,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렸다”고 덧붙였다.
2020년에 태어난 첫째와 지난해 얻은 둘째 아들에 이어 다음 달 셋째 출산을 준비 중인 황 사모는 자녀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부모님께 그렇게 배웠듯, 우리 아이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길 바란다”며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이 공급하시는 은혜로 기뻐하는 모습을 일상에서 충만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이어 “아이들이 삶의 자리에서 그분의 일하심을 자연스럽게 듣고 배우며 자라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하늘본교회 사모 , ‘조연’ 아닌 ‘동역자’로
부부는 2026년 1월 ‘하늘본교회’를 개척했다. ‘하늘본교회’는 그 이름에 중의적인 고백을 담았다. ‘하늘을 바라보다’라는 지향점과 ‘하늘에 뿌리를 둔다’는 정체성,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다(Born)’는 생명력을 뜻한다.
황 목사는 “공군 군목으로 6년간 복무한 뒤 지난해 제대하며 진로를 고민하던 중,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개척의 길을 여셨다”고 고백했다. 그는 “스스로의 계획이라기보다 하나님께 이끌려온 기분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존경하는 스승 목사님의 진심 어린 조언이 큰 이정표가 되었다”고 털어놨다.
한국교회에서 사모라는 이름 뒤에 붙는 ‘헌신’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일본인으로서 낯선 한국 땅의 개척교회 사모가 된다는 것은 분명 그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지 않았을까.
황 사모가 기억하는 오키나와 교회에서의 사모는 ‘조연’이 아니었다. 성도들도 목회자와 사모를 구분해 부르기보다 둘 다 ‘선생님’으로 호칭하며 부부 동역자로 서 있었다. 개척교회 사모였던 이모의 모습을 보며 “함께 사역하는 부부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키웠다고 했다.
“결혼할 때 할머니께서 ‘너는 여자로서 최고의 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씀에 깊이 동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모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와 기름 부으심을 믿습니다. 결국 그 가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사모로 부름받은 것이 제게는 영광이자 감사입니다.”
황 사모는 남편 황 목사가 산기도를 하러 가는 매주 금요일이면 직접 강단에 올라 예배를 인도한다. 황 목사 또한 아내가 '한국교회 사모'라는 정형화된 틀에 갇히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만의 고유한 빛깔을 마음껏 발산하기를 바라고 지지한다.
그는 “아내가 ‘한국교회의 사모 문화에 맞출 수는 있겠지만, 나는 사실 거기에 맞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고백했다”며 “하나님이 아내에게 주신 고유한 성품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아름답게 꽃피우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한일의 상처를 넘어, 복음으로 잇는 다리로
하늘본교회는 다음세대를 포함해 20명 남짓한 젊은 세대가 모인다. 공동체 중심에는 ‘일본 선교’가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소망하는 수준을 넘어, 매 예배 때마다 일본어 찬양으로 마음을 모으는 이들에게 일본 선교는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가장 소중한 사명이다.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황 사모는 한일 간의 역사적 상처를 언급하며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관계’에서 찾았다. 그는 “한국교회의 일본 선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며 “이는 규모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정말 큽니다. 제 존재 자체가 한국교회의 선교 사역이 거둔 소중한 열매이며, 그 결실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일본의 작은 교회들을 섬기며 교류하다 보면, 규모와 상관없는 큰 은혜를 경험하곤 합니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보내는 선교를 넘어, 일본 교회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교회 또한 초창기의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황 사모의 비전은 분명하다. 한국교회와 신학생, 성도들에게 일본 선교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며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는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원했던 일을 충실히 행해주었구나”라는 칭찬을 듣고 싶다며,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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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안나, 한국 이름 황안나(31) 하늘본교회(황진호 목사) 황 사모의 고향은 일본 오키나와다. 미국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의료선교를 꿈꾸던 그는 운명처럼 한국인 목회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장신대 신대원을 거쳐 지난해 8월 연세대 선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를 잇는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 야마토게임다운로드 다. 사모이자 두 아들의 엄마 그리고 다음 달 셋째 딸 출산을 앞둔 황 사모를 지난 12일 하늘본교회에서 만났다.
오키나와에서 4대를 이어온 신앙
황 사 바다이야기슬롯 모는 1945년 태평양 전쟁 후반기 오키나와 전쟁 직후, 미국 선교사의 영향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증조할머니로부터 시작된 4대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고향 오키나와를 “일본 본토와는 결이 조금 다른 섬”이라고 소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통치를 받았던 역사적 특수성으로 미군 기지가 많고, 타 문화와 종교에도 비교적 열려 있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었다는 설명이다. 황 사모는 “일본 전체 복음화율은 1% 미만으로 매우 낮지만, 오키나와는 3%대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수용적인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반 학교에 다니면 크리스천이 한두 명뿐인 경우가 많고, 일요일 행사가 잦은 일본 문화 특성상 신앙생활을 병행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신앙을 최우선으로 여긴 부모님 릴게임바다신2 의 결단 덕분에 그는 일본 최초의 크리스천 대안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이곳에서 수학하며, 그는 견고한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황 사모에게 신앙은 단순히 ‘가문의 전통’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모부가 목회하는 개척교회에서 성장하며 일상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세밀한 응답을 경험하며 바다이야기합법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고 말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음악가 집안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음악 선생님이었고, 세 자매 중 언니와 동생은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 무용에 매진하며 예술가의 길을 걸었지만, 진로를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무용의 좁은 문과 유학 및 발레단 진출에 따른 현실적인 부담이 컸던 탓이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데 무엇을 도구 삼아야 할까 고민하던 중, 어머니의 권유로 의료선교라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렇게 선교의 도구를 찾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의 기독교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도전을 시작했죠. 하지만 졸업을 앞둔 4학년 무렵 내가 진정으로 갈망한 것은 의료라는 ‘수단’이 아니라 선교라는 ‘본질’ 그 자체였다는 사실이었어요. 도구가 없더라도 그저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뜨겁게 차올랐습니다. 마침 당시 미국은 트럼프 1기 정부의 영향으로 외국인 학생에 대한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지는 등 현실적인 문도 좁아지고 있었어요.”
국경을 넘어 신학으로 맺어진 운명적 만남
황 사모가 한국에서의 신학 공부를 결단한 데에는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한국과의 인적 교류가 큰 몫을 했다. 어린 시절 오키나와의 개척교회를 찾았던 한국 선교팀부터, 유학 시절 곁을 지켜준 한국인 친구들까지. 그들과 맺은 깊은 유대감은 그를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이끌었다.
그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오키나와는 지금처럼 가깝고 흔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인 항공편만 오가던 시절, 그럼에도 이모부의 개척교회에는 한국 선교팀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일곱 살 소녀의 눈에 비친 한국 선교팀의 모습은 너무나 따뜻했다. 그는 “어릴 적 엄마에게 ‘나는 왜 한국인이 아니냐’고, ‘왜 내 이름은 김안나가 아니냐’고 엉엉 울었을 만큼 한국을 향한 사랑이 남달랐다”고 회상했다.
“고교 시절 부산에서 보낸 3개월간의 교환학생 생활, 그리고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한국 학생들과의 교류, 미국 유학 시절에도 늘 한국인 공동체 안에서 머물며 언어와 문화를 익혔습니다. 미국에서 의료선교를 꿈꿨던 이유도 사실 북한 사역을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었어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무언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열심은 어릴 적부터 하나님께서 내 안에 심어주신 사명 같아요.”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고 한국을 찾은 그는 운명처럼 지금의 남편 황진호 목사를 만났다. 일본 선교 사역을 하던 지인의 소개로 만난 자리였다. 두 사람은 신앙의 동역자로 서로를 격려하며 관계를 쌓아갔다. 황 목사는 그에게 장신대 외국인 전형을 안내하며 신학의 길을 함께 걷길 권했고, 이후 오키나와로 떠난 비전트립에서 두 사람의 인연이 더욱 깊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먼저 마음을 고백한 것은 황 목사였다. 황 목사는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국제결혼에 대한 마음을 주셨는데,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아내를 보며 이 사람을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고백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교제로 사랑을 키워왔다. 2018년 3월 황 사모가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며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남편은 당시 신대원 3학년, 그는 1학년이었던 그해 7월, 두 사람은 한국과 일본에서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황 사모는 남편에 대해 성격이 밝고 참 재밌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신앙의 성숙함이 깊게 느껴졌다”며 “한 살밖에 많지 않은데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신앙적인 질투가 날 정도였다”고 고백했다. 이어 “늘 신앙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왔는데, 남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렸다”고 덧붙였다.
2020년에 태어난 첫째와 지난해 얻은 둘째 아들에 이어 다음 달 셋째 출산을 준비 중인 황 사모는 자녀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부모님께 그렇게 배웠듯, 우리 아이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길 바란다”며 “부모인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이 공급하시는 은혜로 기뻐하는 모습을 일상에서 충만하게 보여주고 싶다”고 고백했다. 이어 “아이들이 삶의 자리에서 그분의 일하심을 자연스럽게 듣고 배우며 자라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하늘본교회 사모 , ‘조연’ 아닌 ‘동역자’로
부부는 2026년 1월 ‘하늘본교회’를 개척했다. ‘하늘본교회’는 그 이름에 중의적인 고백을 담았다. ‘하늘을 바라보다’라는 지향점과 ‘하늘에 뿌리를 둔다’는 정체성,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다(Born)’는 생명력을 뜻한다.
황 목사는 “공군 군목으로 6년간 복무한 뒤 지난해 제대하며 진로를 고민하던 중,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개척의 길을 여셨다”고 고백했다. 그는 “스스로의 계획이라기보다 하나님께 이끌려온 기분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존경하는 스승 목사님의 진심 어린 조언이 큰 이정표가 되었다”고 털어놨다.
한국교회에서 사모라는 이름 뒤에 붙는 ‘헌신’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일본인으로서 낯선 한국 땅의 개척교회 사모가 된다는 것은 분명 그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지 않았을까.
황 사모가 기억하는 오키나와 교회에서의 사모는 ‘조연’이 아니었다. 성도들도 목회자와 사모를 구분해 부르기보다 둘 다 ‘선생님’으로 호칭하며 부부 동역자로 서 있었다. 개척교회 사모였던 이모의 모습을 보며 “함께 사역하는 부부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키웠다고 했다.
“결혼할 때 할머니께서 ‘너는 여자로서 최고의 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씀에 깊이 동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모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와 기름 부으심을 믿습니다. 결국 그 가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사모로 부름받은 것이 제게는 영광이자 감사입니다.”
황 사모는 남편 황 목사가 산기도를 하러 가는 매주 금요일이면 직접 강단에 올라 예배를 인도한다. 황 목사 또한 아내가 '한국교회 사모'라는 정형화된 틀에 갇히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만의 고유한 빛깔을 마음껏 발산하기를 바라고 지지한다.
그는 “아내가 ‘한국교회의 사모 문화에 맞출 수는 있겠지만, 나는 사실 거기에 맞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고백했다”며 “하나님이 아내에게 주신 고유한 성품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아름답게 꽃피우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한일의 상처를 넘어, 복음으로 잇는 다리로
하늘본교회는 다음세대를 포함해 20명 남짓한 젊은 세대가 모인다. 공동체 중심에는 ‘일본 선교’가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소망하는 수준을 넘어, 매 예배 때마다 일본어 찬양으로 마음을 모으는 이들에게 일본 선교는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가장 소중한 사명이다.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황 사모는 한일 간의 역사적 상처를 언급하며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을 ‘관계’에서 찾았다. 그는 “한국교회의 일본 선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라며 “이는 규모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회가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정말 큽니다. 제 존재 자체가 한국교회의 선교 사역이 거둔 소중한 열매이며, 그 결실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일본의 작은 교회들을 섬기며 교류하다 보면, 규모와 상관없는 큰 은혜를 경험하곤 합니다. 이제는 일방적으로 보내는 선교를 넘어, 일본 교회와의 교류를 통해 한국교회 또한 초창기의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는 상호작용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황 사모의 비전은 분명하다. 한국교회와 신학생, 성도들에게 일본 선교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며 일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그는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가 원했던 일을 충실히 행해주었구나”라는 칭찬을 듣고 싶다며,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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